식품 공학의 발전 또한 전쟁에서 발전된 기술들이 적용되어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이 저의 뱃살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1. 음식에 대한 욕망
식품공학에서 기술혁신을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음식에 걸린 돈은 막대하고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손님에게 빠르게 햄버거를 제공할 수 있다면 수백 개를 팔 수 있겠죠? 또한 고객들의 입맛은 날로 까다로워져서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기 원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음식에 대한 기술투자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기술혁신은 전쟁을 통해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해도 상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분무건조와 탈수 등 새로운 저장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1942년 미국 민간인 남성의 평균 125파운드의 육류를 섭취하는 동안, 군인은 평균 360파운드를 먹었습니다.
미군은 역사상 가장 영양 상태가 좋은 군대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식량공급이 안정적인 공급을 넘어서 수확기에 있는 식량의 반을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회사들은 이윤을 내기 위해 기술혁신에 지속적인 투자를 계속합니다.
몬산토(Monsanto) 같은 생명공학 회사들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 조작을 하여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산출량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또한 호멜(Hormel)과 유니레버(Unilever) 같은 회사는 군대에서 개발된 극초단파와 고압수를 이용하여 고기와 야채를 미리 조리하는 가공법으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켰습니다. 또한 맥도널드는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냉동 버거와 감자튀김을 만드는 핵심 기술부터 케첩 짜는 기구 같은 작은 소품까지 기술혁신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기술혁신의 투자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쟁입니다. 전쟁이나 테러를 일으키는 주요한 동기 중 하나는 배고픔입니다. 50년 안에 세계 인구는 2배가 되고 개발도상국 6억 명이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식품에 대한 기술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며, 미국에서 내다 버리는 음식을 잘 활용하는 것도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비만 국가에는 스팸이 있다.
하와이의 인구는 120만 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스팸 소비를 주도하는 곳입니다. 1년에 하와이에서 소비하는 통조림이 700만 개, 한 사람당 6개씩 먹고 있습니다. 괌은 더 합니다. 1년에 한 사람당 16개를 먹고 있습니다. 하와이, 괌뿐 아니라 태평양 제도에 하는 사람들은 스팸을 사랑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정육업체인 호멜(Hormel)사 창립자의 아들인 제이 호멜이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의복과 식량 공급을 맡은 병참장교로 프랑스에서 복무했습니다. 상관들의 대서양을 가로질러 고기를 실어 나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이 호멜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포장하는 대신 뼈를 발라내면 어떨까? 제이 호멜이 받아들여져 뼈를 발라낸 쇠고기를 작게 포장해서 유럽으로 실어 보내게 됩니다. 이 방법으로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 회사로 돌아와 최초로 햄 통조림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성공작은, 잘 팔리지 않는 돼지고기 어깻살과 뒤쪽 넓적다리를 섞어 첨가물과 소금을 넣어 햄과 비슷한 맛을 재연했고, 아질산나트륨으로 변색을 막은 것이었습니다. 이 통조림은 처음에는 "스파이스드 햄 spiced ham"이라 불려고, 이것은 나중에 새 이름을 얻었으니 바로 <스팸>입니다. 하지만 진짜 성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이뤄졌습니다. 미군의 전시 식량으로, 휴대가 쉽고 가볍고 싸고 상할 염려가 거의 없는 스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1944년까지 호멜 스팸 생산량 중 90%가 군대가 가져갔습니다. 미군이 주둔한 태평양 제도에서 스팸은 민간인들에게도 퍼지면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들은 스팸을 자기네 토속 음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도 스팸의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이들 국가는 모두 '미군이 주둔했다는 것'과 '쌀을 주식 또는 많이 먹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제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뇨병, 뇌졸중, 심장병. 스팸과 통조림의 부작용이 이 지역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2008년 세계 10대 비만 국가 중 8개국이 태평양 제도의 나라들이었습니다.
3. 잠수함 주방을 닮은 맥도날드 주방
맥도널드는 뉴햄프셔 주에 있는 신발공장 공장장의 아들인 리처드 딕 맥도널드와 그의 형 모리스 맥 맥도널드가 시작했습니다. 1937년 처음에는 핫도그 가판대부터 시작하여 드라이브인 맥도널드 식당을 개업을 하여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맥도널드 형제는 작업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과 요식업계에서 쓰는 전통적인 도구와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맥도널드 형제는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처럼 식당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맥도널드 형제는 직접 장비를 발명했습니다. 대형 그릴, 여러 개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넓은 쇠 주걱, 적정량의 케첩과 머스터드를 짜는 스테인리스 스틸 펌프 용기 등 개발했습니다. 또한 모든 식기류는 폐기하고 종이봉투와 종이 포장지, 종이컵으로 바꿨습니다. 이들 제품들은 대부분 지금도 사용되고 있죠. 이들의 노력으로 1954년까지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맥도널드는 기업가인 레이 크록을 만나 새롭게 태어납니다. 맥도날드 체인점을 본격적 시작하게 되었죠. 크록은 주방을 디자인을 의뢰하기 위해 쉰들러라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쉰들러의 이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쉰들러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 육군 통신대에서 교육을 받고, 군수품 제작에 필요한 도구를 설계했습니다. 쉰들러는 실제로 잠수함 주방을 설계했는데, 잠수함의 좁은 공간을 효율적인 활용과 튼튼하고 청소하기 쉽게 설계했던 경험을 맥도널드 주방을 설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1) 감자튀김
1963년까지 400개가 넘는 매장을 확장하면서 품질관리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든 매장에서 똑같은 버거와 감자튀김의 맛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감자튀김은 메뉴 중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품이었습니다.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자르고 튀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3000개가 넘은 매장에 감자를 납품하는데 품질이 모두 들쭉날쭉했습니다. 심플롯에서는 급속냉동기술을 이용하여 냉동 감자튀김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잘 안 팔렸습니다. 심플롯은 맥도널드의 크록을 찾아가 냉동감자튀김을 소개했고 서로가 윈-윈한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플롯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포춘 선정 500대 기업에 속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심플롯은 세계보건기구가 유행성 비만이라 부르는 질병의 일등 공신이기도 했습니다.
2) 패티
1960년대 소형 정육 공급 업자 셋이서 뭉쳐 맥도널드의 쇠고기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로 '에퀴티 미트'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쇠고기 패티를 200도 이하의 극저온으로 급속 냉동하고 육즙이 새어나가지 않게 밀봉하는 방법으로 고기를 가공했습니다. 처음 맥도널드 경영진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맛을 보고 꽤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후로 맥도널드 매장은 모두 냉동 패티로 재료를 바꾸었습니다.
에퀴티 미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계 최대 쇠고기 공급업체가 되었습니다. 키스톤 푸즈로 이름을 바꾸고 전 세계 3만 개 식당에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로 변했습니다. 또한 에퀴티 미트에서 개발한 기술을 전수받은 골든 스테이트, 오토 앤드 선즈 같은 회사도 업계 거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3. 맥너겟
맥너겟은 우연히 만들어졌지만, 키스톤 푸즈는 닭의 살코기를 한 입 크기로 가공하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타이슨 푸즈라는 닭고기 생산업체와 공유했습니다. 타이슨 푸즈는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로 맥도널드의 은총으로 미국 최대 닭고기 생산업체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완전히 새로운 '미스터 맥도널드' 별명의 닭고기 품종까지 만듦으로 맥너겟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맥도널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닭고기 구매자가 되었습니다. 1위는 KFC입니다.
맥도널드는 기술혁신을 통해 엄청난 매출과 수익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세계 제일의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3만 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지고 있지요. 또한 적시 공급 모델을 개척해 물류 공급을 개혁도 했는데요. 지역마다 물류센터와 보관 창고를 세우고 바로바로 물품을 공급해주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 전체 식품 생산 시스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4. NASA가 키운 도미노피자 그리고 피자헛
NASA가 개발한 기술력은 일반 식료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0년대 미세조류를 발견했는데요. 폐기물 처리를 돕는 미세조류는 꽤 괜찮은 영양 보충물이었습니다. 마르텍 바이오사이언시스 과학자들은 미세조류가 유아 발달과 성인 건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DHA와 아라키돈이라는 희귀 지방산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특히 DHA는 모유에서만 발견되는 탓에 구하기 어려운 지방산이었지요. 이 영향 보충제는 지금도 제너럴 밀스, 요플레, 오드 왈라, 켈로그 같은 주요 식품회사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주연구는 또한 피자와 서브마린 샌드위치도 더 빨리 만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990년대에 NASA는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사용할 크기가 작고 에너지 효율이 좋은 오븐을 만들기 위해 댈러스에 '이너시스트 디벨로프먼트 센터'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너시스트는 극초단파 공기 충돌이라는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는데요. 오븐 내부를 모두 데우는 대신 식품에 뜨거운 공기를 직접 분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존 오븐보다 최대 4배까지 빨라졌습니다. 도미노피자, 피자헛 체인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10만 개 업체가 이너시스트에 사용허가를 받아서 이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이 기술로 피자를 만들 때 27분이 걸리던 시간이 6분으로 줄었습니다.
러시아의 우주 계획도 NASA와 비교하면 역시 효율을 추구했는데요. 러시아는 대개 기존의 통조림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미국처럼 우주식량을 개발하는데 수백만 달러를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 개발이 안겨주는 혜택을 맛볼 수는 없었습니다. 소련은 국가가 개발한 기술을 선뜻 기업과 나누려 하지 않았고, 기업은 우주 기관이 개발한 기술에 무관심했습니다. 경쟁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죠. 미국은 국가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제품들을 민간 기업에서 상용화하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과 대조적입니다.
5. 녹색혁명이 공산주의를 막다.
식량을 무기로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소련은 자기들보다 덜 강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했습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세계 곳곳에서 공산당 운동이 일어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목표가 된 개발도상국을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하여 이들이 소련의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첫 번째로 멕시코가 실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40년 멕시코는 식량부족으로 밀의 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944년 노먼 볼로그가 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멕시코로 갔습니다. 그가 거의 십 년에 걸쳐 다양한 밀 종자를 교배한 끝에 내놓은 건 잡종 식물이었습니다. 검은 녹병도 잘 견디고 기존의 종자보다 훨씬 많은 종자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멕시코는 1950년 밀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1960년에는 연간 50만 톤을 수출하는 밀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해준 이 기적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공산주의로 돌아서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볼로그가 개발한 농경 기술은 또 다른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었습니다. 이 기술로 두 나라는 1970년 대 중반 밀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죠. 볼로그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녹색혁명은 멕시코와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이 소련식 공산주의라는 유혹을 뿌리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녹색혁명을 이루는데 공헌했다며 나를 1970년도 수상자로 지명했습니다. 이는 농업 및 식량생산의 역할이 빵을 위해서나 세계 평화를 위해서나 치명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볼로그-
과학자들은 녹색혁명의 한계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생명체를 대상으로 유전자 실험을 진행해갔습니다. 재조합 DNA를 이용해 좀 더 좋은 식품을 만들었습니다. FDA 심사를 최초로 통과한 제품은 프레이버 세이버 토마토로 칼젠이라는 작은 회사가 만들었습니다. 토마토의 부드러운 성질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칼젠 과학자들은 토마토의 단단한 성질을 지키면서 과일을 숙성시키는 유전자를 넝쿨에 주입하여 쉽게 상하지 않는 토마토를 만들었습니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를 팔았습니다. 몬산토는 라운드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라운드업에 죽지 않는 '라운드업 레디 콩, 옥수수'도 함께 팔았습니다. 이 품종들은 라운드업에도 견디게 유전자 변형을 시킨 거였습니다. 덕분에 제초제를 밭 전체에 뿌려도 이 콩과 옥수수 품종들을 살아남고 오직 잡초만 죽었던 거죠. 제초제를 소형 비행기로 살포함으로 노동력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몬산토는 소에게 먹이면 우유 생산량을 늘려주는 '하이 게 트로핀 (Hygetropin)'이라는 약을 만들어 1994년 포실 락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소의 우유 생산량이 1년에 약 10%씩 증가했습니다. 또한 몬산토는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와 목화 종자도 만들었습니다. 몬산토 다양한 범위에서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된 고엽제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죠. 이런 몬산토는 여러 국가의 강과 호수에 유독성 폐기물을 무단 방류했다가 엄청난 배상금을 물기도 했습니다. 화학 사업을 주도하고 거대한 사업 규모 때문에 몬산토는 맥도널드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6. 전쟁기술의 발전과 기술전파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 글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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